“경외, 지혜의 시작 — 잠언에서 길어올린 삶의 나침반”
“경외, 지혜의 시작 — 잠언에서 길어올린 삶의 나침반”
경외는 무서움이 아니다, 방향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잠 1:7)
성경 잠언의 첫 문장은 이렇게 땅을 울립니다. 경외란 무엇일까요? 두려움? 존경? 아니면 종교적인 수사? 하지만 잠언에서 말하는 "여호와를 경외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이고, 존재의 태도이며, 지혜의 시작 점입니다.
Z세대든 X세대든,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싶다'는 본능을 갖고 있죠. 그런데 잠언은 말합니다. 잘 사는 길의 시작은, 철학 서적이나 셀프 헬프 책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라고요.
경외의 히브리어적 뉘앙스
경외(敬畏)는 히브리어로 “야레(yare)”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무서워서 떠는 공포가 아니라, 권위 있는 분 앞에 서 있을 때 느끼는 존경과 떨림이 동시에 섞인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태도”죠.
이건 마치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최정상급 지휘자 앞에 섰을 때, 무대를 우러러보며 느끼는 긴장감.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그 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이 주는 경건한 떨림입니다.
잠언이 말하는 경외의 유익
잠언을 읽어보면, 경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익이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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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근본이 됨 (잠 1:7, 9:10)
→ 인간의 생각보다 더 크신 분의 시선으로 인생을 보는 법을 배우는 거죠. -
악을 미워하게 함 (잠 8:13)
→ 경외는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한 기준’을 가지게 하는 힘이에요. -
생명의 샘이 됨 (잠 14:27)
→ 내면의 공허함, 불안함, 정체성의 위기를 잠재우는 근본적 에너지가 됩니다. -
장수와 평안의 열쇠 (잠 10:27, 19:23)
→ 흥미롭게도 경외는 육체적 건강, 사회적 안정과도 연결된다고 말해요. 복이 따르는 삶이라는 거죠.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경외합니까?
요즘은 경외할 대상을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 권위는 무너졌고, 믿을 만한 기준은 흐릿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과 인플루언서의 조언은 유익하지만,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어요.
잠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구 앞에서 너는 살아가고 있니?”
“무엇 앞에서 너는 결정을 내리고 있니?”
경외는 무엇이 나의 최우선 가치인가를 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 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내 인생의 키워드로 삼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건 보수적이거나 답답한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자유와 내면의 안전 지대를 만드는 길이에요.
경외는 종교가 아니라 존재의 자세다
누군가는 “경외”라는 단어를 듣고 “신앙 열심히 하는 사람들 이야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경외는 목사나 선교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 존재가 피조물로서 가져야 할 기본 태도라고 말하죠.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도, 경외의 정신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잠언은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 첫 걸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결론: 경외 함은 옛날 단어가 아니다
'경외' 라는 단어는 고전적이고, 어쩌면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분,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분 앞에 마음을 낮추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이렇게 기도해볼 수 있습니다.
“주님,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믿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경외함으로 오늘 하루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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